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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실천의 주춧돌 역할 기대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싱겁게 끝나면서, '반전평화기독연대'의 향후 활동방향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의 전쟁 위기와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 상황에서 탄생한 '반전평화기독연대'는 여러 면에서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선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처음으로 결성된 반전운동 단체라는 사실이 그렇고, 일정한 조직을 갖추지 않고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로 존재하면서 자발적 참여를 동력으로 삼아 활동해 왔다는 사실이 그렇다. 또한 지존의 기독교 운동단체는 물론, 연합기관과 교단, 그리고 학생운동 단체를 모두 망라한 40여개 기관과 단체가 가입해 활동해 왔다는 사실 역시 특이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반전평화기독연대(이하 기독연대)의 활동은 시기적 특성상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공식 결성된 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두 번째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해서 끝나기까지의 시기, 그리고 세 번째는 이라크 전쟁이 끝난 이후의 시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시기는 문자 그대로 '전쟁반대'운동을 펼쳐 나가는 시기로 볼수 있기 때문에 그 활동내용이 크게 차별화되지는 않는다. 따라서이라크 전쟁이 끝나기 전과 끝난 이후로 나누어 기독연대의 활동을 살펴보는 것이 더 단순명료할 것 같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기 까지 기독연대는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활동에 집중했다. 구체적으로는 종로5가 기독교회관 앞 평화기도마당에서 매일 반전기도회를 갖고 반전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기독연대에 참여하는 단체들이 돌아가며 예배를 주관했고,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여했다. 이시기 기독연대 활동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부활절인 4월20일 오후 3시 광화문 감리회관 앞에서 드린 '반전평화 부활절 연합예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날 예배에서 설교를 맡은 이해학목사(주민교회)는"부활은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고난의 자리에 연대하는 그곳에 온전한 부활의 소망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김대원신부의 집례로 거행된 성만찬을 통해 평화를 기원하며 모이는 자리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임재해 계심을 경험했으며, 참석자들의 뜻을 모은 공동고백문이 낭독되기도 했다. 비가 내리는 굳은 날씨에에도 불구하고 200여명이 참석, 평화를 향한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이 예배는, 같은 날 월드컵경기장에 수천명이 모여 드린 부활절예배보다 월씬 더 의미있는 자리라고 기독연대 스스로는 평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느슨한 네트워크에 불과한 기독연대라는 조직이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극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연대에 참여하는 개교회들을 중심으로 교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부활절 연합예배는 기독연대의 활동이 이라크 전쟁 이후로 넘어가는 분수령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후부터 기독연대는 부활절 연합예배 등으로 표출된 기독연대의 역량을, 전쟁이 끝난 이후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에 골몰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이라크 전쟁 이후의 기독교 반전 평화운동'에 대한 논의는, 이라크 전쟁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할 수 도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기독연대 같은 단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기독연대 스스로도 종전 이후 이 문제에 대해 수차례 논의를 했지만, 이직 분명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제까지 기독연대의 논의과정을 통해 합의된 것은, 지금의 느슨한 네트워크의 형태로 계속 활동을 펼쳐 나간다는 것 정도이다. 새로운 조직의 형태를 갖는다는 것도 현재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환경상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그동안 이어 왔던 활동을 접는다는 것도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좀 더 실천적인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계속 논의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기독연대가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은, 한국교회 에큐메니칼운동이 처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권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교단간 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동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약화된 것은 물론, 그동안 실천을 담당해 왔던 기독교 사회운동 조직들 역시 90년대 중반 이후로 계속 침체와 단절의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기독연대는, 비록 그 영역이 '반전 평화'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운동의 동력을 새롭게 확인시켜 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독연대가 그동안 갖춰 온 실천적 동력을 토대로 한국교회 에큐메니칼운동의 실천적 동력을 다시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견해가 기독연대 내부에서 제기됐지만, 이것이 자칫하면 '새로운 기구의 구성'으로 비쳐져 오해를 살 소지가 생겨날 수도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한국교회 에큐메니칼운동의 실천적 동력이 회복돼야 한다는 것은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며, 기독연대가 지금의 형태에서 실천적 역량을 조금씩 강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그 가능성을 하나하나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기독연대가 현단계 한국교회 에큐메니칼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기독연대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즉, 이라크 전쟁이 끝난 이후 기독연대의 활동은 어쩔 수 없이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바, 한반도 문제가 단순한 '전쟁반대', '평화실현'이라는 도식 속에서 파악되고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두 여중생을 사망하게 만든 미군 병사를 처벌하지 못하는 불평등한 SOFA의 개정을 요구하며 일어난 촛불시위가 자연스럽게 민족의 자주권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 것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독연대가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들에 어떤 논리와 자세로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가 운동의 내용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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