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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공조로 문제 풀어나가야" 북한 핵과 한반도 이라크 전쟁이 끄난 뒤 세계의 관심은 자연히 한반도로 쏠렸다. 북한 역시 이라크와 함께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악의 축' 혹은 '불량국가'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지난 2002년 10월17일 '핵개발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발표했는가 하면, 12월에는 영변 핵사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폐연료봉 봉인시설 및 감시카메라를 무력화시키고 감시단원을 추방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난 4월23일부터 25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북중미 3자회담에서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을 '핵무기를 보유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대북 강경책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크게 세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과연 북한이 핵 보유 선언을 한 배경은 무엇이며, 실제로 핵을 보유하고 있느냐 하는문제, 둘째, 미국은 과연 북한에 대해 무력을 사용할 것이냐의 문제, 그리고 이 상황을 가장 현명하게 풀어 나가는 방법은 무엇이며 우리 정부는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그것이다. 벼랑 끝의 선택? 흔히들 북한의 외교를 '벼랑끝 외교'라고 부른다. 이것은 북한 외교의 최종 목표가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지금의 체제와 미국의 불가침 방침을 보장받는 데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즉,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독자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 시인'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은 체제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은 계속해서 미국의 '불가침 보장'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잇따라 무력사용의 가능성을 내비침으로써 스스로 북한을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미국이 이라크를 무력으로 침공한 것은 북한의 이같은 위기감을 더욱 증폭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와 북한을 둘러싸고 미국이 그동안 보여 온 태도들은 이라크에 이어 북한 역시 미국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의구심을 더욱 키워 왔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핵 보유 시인'은, 미국의 무력 사용을 막을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극단적인 방법으로 돌출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를 통해 남한을 비롯한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위기감을 고조시켜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반대하게 만드는 한편,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오기 위한 카드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와 2003년 4월25일 북미중 3자회담이 소득 없이 끝난 시점까지 북한의 입장이 달라진 것은 사실상 없으며, 이라크 점령에 성공한 미국이 북한의 핵을 기화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훨씬 다양해진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북한은 정말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답은 아무도 제시하지 못한다. 북한이 핵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벼랑끝 외교'의 일환으로 그동안 IAEA의 통제 안에 있던 핵관련 시설을 자신의 통제권 안으로 회수했다는 것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보유했느냐의 여부는 주변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어차피 핵 보유 시인 발언이 미국의 압박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체제유지를 위한 협상용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북한 스스로가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 등 주변국가에 큰 위협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동북아 지역의 핵보유 도미노 현상을 불러 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간단하게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딜레마 북한의 핵 보유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과연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무력공격을 감행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이후 더욱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은 엄청난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 딜레마는 미국과 이라크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우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가장 큰 이유가 석유를 둘러싼 이권에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량학살무기나 테러범 지원 등의 증거가 나타났느냐의 여부와 상관 없이, 미국은 이라크를 점령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석유 이권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에는 석유같은 막대한 이권이 없다. 또 이라크 주변에는 특별한 강대국이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발하고 있지만, 이들의 속내는 오히려 미국이 이라크를 발판으로 자신들에게 세력을 뻗어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 이라크 뿐만 아니라 중동 전체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재편하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같은 그림을 전제로 한다면, 이라크 침공은 이라크가 위협적인 존재여서가 아니라, 어차피 '잡고 가야 할 존재'였기 때문임을 암시해 준다.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우선 전통적으로 우방관계를 맺어 오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게다가 미국의 '혈맹'으로 자처해 왔던 한국에서는 갈수록 미국의 강경정책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해 핵무기 포기를 종용하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무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무력사용 대신 김정일정권의 붕괴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묵인'이 전제돼야 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이에 상응한 대가를 양측에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오는 2020년대에는 한국 역시 중국경제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하는 중국의 입장을 감안할 때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또 미국 역시 중국을 '미래의 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정권을 둘러싼 거래가 이익이 되는 장사인지를 쉽게 판단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북핵 용인으로 전환?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대응과 관련, 미국이 오히려 북한 핵을 용인하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평화네크워크의 정욱식대표는
지난 5월6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이
드러내 놓고 천명하지는 않겠지만, 북한의 핵 보유를 막는 것이 아니라
핵의 이동, 즉 수출을 봉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끈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같은 징후를 보도한 미국 언론의 사례를 제시했다.
문제는 미국의 이같은 정책 변화가 한국과 중국에 던져 주는 부담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 핵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과 중국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입장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 두 나라는 모두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이나 봉쇄노선에 반대해 왔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전환은 곧 이 두 나라의 딜레마로 이어지게 된다는게 정욱식대표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방위계획(MD)의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을 계속 압박하는 동시에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도 MD에 끌어들이는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꽃놀이패'를 쥐게 되는 셈이다. 기대 못미친 한미정상회담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선택은 그 폭이 상당히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우려는 지난 5월14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현실화됐다. 양국정상은 회담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주한미군의 재배치 문제와 관련,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상황을 신중히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밝히는 한편, '기술력을 활용하여 양국군을 변화시키고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위협에 대한 대처능력을 제고함으로써 한미동맹을 현대화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국의 국력 신장에 따라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계속 증대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데 대해서도 유의하였다"고 밝혔다. 경제문제와 관련, 양국 정상은 '범세계적 무역자유화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도하개발프로젝트의 성공적 타결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과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포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는 우리 정부의 평가와는 달리, 시민단체 등에서는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비판적인 평가가 지재벅이다. 무엇보다,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강조했지만, 미국의 '추가조치'의 가능성을 열어 놓음으로써 북한에 대한 미국의 무력 사용을 용인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 핵의 평화적 해결은 이미 노대통령과 부시의 전화 통화에서도 확인된 바였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적어도 미국의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또한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위협에 대한 대처능력 제고'와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군의 역할 증대' 등의 내용은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를 용인하고 미국의 무기를 계속해서 구매하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미주둔군지위협정, 즉 SOFA의 개정이나 군사 작전권 이양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어, 과연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공동성명의 표현대로 '완전한 동반자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울러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조류에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내용마저 포함돼 있어,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여론은 더욱 커져만 갔다. 결국, 노대통령이 귀국한 바로 다음날 광주 5.18 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23주년 기념식'에서는, 한총련 등의 '친미 굴욕외교 규탄 시위'로 인해, 노대통령이 후문으로 기념식장에 들어가고 나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의 선택은? 노대통령의 방미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우리가 북한 핵 문제를 어떤 방향에서 풀어 나가야 하는가를 암시해 주고 있다. 이번 방미 결과를 실망스럽다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끌려가면서 민족공조로 풀어 나갈 수 있는 여지를 거의 남겨 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이 북한지원을 핵문제와 연계시키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의 일방적인 핵 포기선언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북핵문제는 북한에 가해지고 있는 압박과 위협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겪고 있는 압박과 위협의 진원은 미국이다.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미국의 변화에서 찾아야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 과정을 통해 우리 정부는 미국의 변화를 요구하기 보다는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끌려다니는 무능함을 드러냈다. 이로써 우리 정부는 앞으로 이루어질지 모르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다자간 회담에서 계속 북한에 의해 배제되는 운명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으로서도 남한 정부에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5월19일부터 평양에서 열린 제5차 남북경제협력위원회가 '헤아릴 수 없는 재난 발언' 등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쌀 지원을 비롯해서 개성공단 착공, 경의선 동해선 철도 연결 등의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핵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도 불구하고 지원과 경제협력은 계속해 나간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친미와 반미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북한 핵 문제를 민족공존과 화해, 그리고 평화라는 원칙 아래 다루어 나갈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 핵 문제를 기화로 미국이 보여 주고 있는 미국의 태도들은, 우리로서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것들이며, 따라서 노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핵 문제는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의 삼각 구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미국, 그리고 주변국 등 다각 구도 안에에 있다는 인식이 해결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즉, 계속적인 민족공조를 통해 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공동운명체 의식'을 키워 나가면서, 미국의 일방주의적 접근에 공동 대응해 나가는 한편, 이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협력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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